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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발효식품

전통발효식품 장류의 색상 변화, 그 깊은 속 이야기

by 라이프로그 1시간전 발행 202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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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발효식품과 색의 의미

전통발효식품은 시간이 만들어낸 정성과 자연의 과학이 어우러진 결과물입니다. 그중에서도 된장, 간장, 고추장 같은 장류는 오랜 시간 발효되면서 색과 맛, 향이 서서히 깊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발효 중에 나타나는 색의 변화는 단순한 외형의 차이를 넘어, 발효 과정의 진행 상태와 품질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처음엔 연한 황갈색이나 누르스름했던 장이 점차 짙은 갈색에서 흑갈색으로 변해가는 현상은 많은 이들이 익숙하게 접하지만, 그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전통발효식품의 발효 과정에서 나타나는 색상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살펴보며, 장의 숙성과정 속에 숨어 있는 변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메일라드 반응의 역할

장류의 발효 과정에서 색상이 짙어지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메일라드 반응(Maillard reaction)입니다. 메일라드 반응은 아미노산과 당이 열 또는 효소 작용을 받아 결합하면서 갈색의 색소와 향기 성분을 생성하는 반응으로, 조리과학이나 식품공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여겨집니다.

된장이나 간장처럼 단백질 함량이 높은 식품은 발효 중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생성되며, 이와 함께 분해된 전분에서 유래한 당류가 만나면서 자연스러운 갈변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 과정은 장이 익어갈수록 천천히 진행되며, 색상이 점차 짙어지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메일라드 반응은 열이 꼭 필요하진 않지만, 온도가 높아질수록 반응 속도가 빨라지는 특징이 있어 여름철 숙성된 장이 더 짙은 색을 띠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산화 반응과 색소 생성

장류의 색 변화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주요 요인은 산화 반응입니다. 공기 중의 산소는 장 내에 존재하는 페놀류, 플라보노이드류 등 자연 색소와 반응하여 갈변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된장의 표면이 공기에 노출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짙은 갈색이나 회갈색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는 산소에 의해 색소 성분이 산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간장의 경우, 숙성 과정 중 표면에 노출된 층은 더 빨리 짙어지며, 공기 접촉을 차단해준 내부는 상대적으로 밝은 색을 유지하기도 합니다. 이는 공기 차단 여부가 장류의 색상 유지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저장 용기의 밀폐도나 보관 환경이 장의 색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발효 미생물의 효소 작용

발효 과정에서 관여하는 미생물 역시 장의 색상 변화에 깊이 관여합니다. 특히 된장 속에 포함된 곰팡이, 효모, 유산균은 각자 고유한 효소를 생산하며, 이 효소들이 단백질과 당, 지방 등을 분해하면서 발효가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Aspergillus oryzae(아스페르길루스 오리제) 같은 누룩곰팡이는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전분을 포도당으로 전환시키는 효소를 다량 생성합니다. 이러한 분해산물은 이후 메일라드 반응의 기질로 작용하며 색의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킵니다.

일부 미생물은 고유의 색소를 생성하기도 하며, 발효 과정에서 이러한 색소들이 장의 전체 색상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발효균의 종류와 균형은 장의 풍미뿐 아니라 시각적인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숙성 기간에 따른 변화 경과

장류의 색상은 하루 이틀 사이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숙성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변합니다. 초기에는 연한 황색 또는 옅은 갈색이 우세하며, 한 달에서 두 달이 지나면 점차 진한 갈색이 되기 시작합니다. 숙성이 6개월을 넘기면 짙은 흑갈색이나 암갈색으로 접어드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장 내에서 수많은 화학적 반응이 축적되어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고추장 역시 초기에는 붉은 빛이 강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브라운 톤이 섞이고, 아주 오래된 고추장은 짙은 밤색에 가까운 색을 띠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색의 농도가 짙어진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화학 반응과 발효 물질의 축적이 만든 색의 깊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색상과 품질의 상관관계

많은 분들이 장의 색이 짙을수록 발효가 잘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일정 수준까지는 색이 짙어질수록 발효가 진전되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짙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품질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고온에서 숙성되었거나 햇빛에 직접 노출되어 빠르게 색이 변한 경우, 맛의 균형이 무너지고 짠맛이나 쓴맛이 도드라지는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색은 품질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일 뿐이며, 냄새, 질감, 염도, 풍미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색이 너무 밝고 누렇다면 발효가 덜 되었거나 미생물 작용이 충분하지 않았을 수 있고, 반대로 검게 변하고 표면에 이물질이 보인다면 산화나 곰팡이 번식 등 보관 상태의 문제일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장의 색, 발효의 언어를 읽는 법

전통발효식품인 장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변하며, 이는 마치 발효가 전해주는 언어처럼 느껴집니다. 연하고 밝던 색이 점차 짙고 고요한 빛으로 물드는 과정은 단순한 색 변화가 아니라, 단백질과 당의 상호작용, 미생물의 삶과 발효 환경이 어우러진 결과물입니다.

이러한 색상의 변화는 발효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지만, 그에 따른 환경과 조건, 그리고 숙성 관리 역시 함께 고려해야 정확한 품질 판단이 가능합니다. 전통발효식품의 깊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색의 표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반응과 관계를 읽어내는 눈이 필요합니다.

전통 장류를 직접 담그거나 선택할 때, 색상을 보는 안목도 함께 키워보신다면 더욱 건강하고 맛있는 식문화를 누릴 수 있으실 것입니다.